야생에서 온순하게

소를 한번 보세요. 차분하고, 느릿느릿하고,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지요. 이제 그 소의 _아주 먼 조상님_을 떠올려 보세요. 자동차만 한 야생 들소에, 창처럼 뾰족한 뿔이 달려 있고, 사람에게는 조금도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동물에서 들판에서 풀을 씹는 순한 동물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그 답에는 수천 년이라는 시간과 아주 많은 인내가 필요했답니다.

아무도 계획하지 않았던 비밀은 바로 이것이에요. 길들이기는 똑똑한 묘수 하나로 된 일이 아니었어요. 수백 세대의 동물에 걸쳐 아주 오래, 천천히 밀어 준 일이었지요.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양을 설계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계속, 또 계속, 어떤 동물들이 곁에 남을 수 있을지 골랐고, 동물들은 우리에게 맞게 조금씩 변해 갔답니다.

아마 시작은 저녁거리였을 거예요. 사냥꾼들은 야생동물을 잡았고, 가끔은 잡아먹는 대신 가장 차분한 새끼들을 살려 두었어요. 사납게 날뛰는 새끼보다 곁에 두기 쉬웠거든요. 성질이 거칠고 겁이 많은 동물들은 싸우거나, 달아나거나, 너무 큰 골칫거리였어요. 느긋한 동물들은 불 가까이에 남았지요. 알고 보니 차분함도 살아남는 비결이었던 거예요.

핵심은 바로 이것이에요. 다정한 동물들이 새끼를 더 많이 낳았어요. 차분한 염소가 먹이를 받고 보호받는 동안 야생 염소들이 달아났다면, 그 차분한 염소는 새끼를 더 많이 키웠겠지요. 그리고 그 새끼들도 역시 차분했어요. 그런 일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면, 집안에서 ‘사람을 피하는 성질’은 천천히 사라지고, ‘사람 곁을 좋아하는 성질’이 자리 잡게 된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으스스하면서도 멋진 부분이 있어요. 동물이 더 길들여지면 몸도 함께 변해요. 누군가 원해서가 아니라, 차분한 성격과 생김새가 몸속에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지요. 길든 동물들은 귀가 더 축 처지고, 흰 얼룩무늬가 생기고, 꼬리가 더 말리고, 이가 작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다정함은 더 부드럽고 귀여운 얼굴과 한 묶음으로 따라왔어요. 선물에 포장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처럼요.

우리는 동물 하나만 길들인 게 아니에요. 일마다 알맞은 동물 친구들을 한 무리나 길들였지요. 양과 염소는 _털, 젖, 고기_를 위해서. 소는 젖과 힘을 위해서. 닭은 알을 위해서. 말과 당나귀는 물건을 나르기 위해서. 돼지는 거의 아무거나 먹고 빨리 자라기 때문에요. 필요한 것이 다르면, 함께하는 동물도 달랐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고양이는 왜 여러분을 못 본 척하고, 염소는 절대 그러지 않는지 알려 줄게요. 모든 동물이 길들여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좋은 농장 동물 친구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너무 쉽게 겁먹지 않고, 빨리 자라고, 우두머리가 있는 무리에서 살고 그래서 사람 우두머리도 따를 수 있고, 싼 먹이도 잘 먹지요. 얼룩말은 이 거의 모든 조건에 맞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도 얼룩말을 타고 일하러 가지 않는답니다.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도 계속 조금씩 밀어 주었어요. 어떤 동물들이 함께 새끼를 낳을 수 있을지 골랐지요. 털이 가장 많은 양과 털이 가장 많은 양, 젖을 가장 잘 내는 소와 젖을 가장 잘 내는 소처럼요. 아주 많은 세대가 지나면, 그렇게 구름 같은 양털을 두른 양과 양동이를 몇 번이고 채우는 소가 생겨나요. 작은 선택들이 동전처럼 차곡차곡 쌓여 커다란 무언가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누군가 농장 동물을 발명한 적은 없어요. 사람들은 그저 야생동물들과 함께 살면서, 차분한 동물들을 가까이에 두고, 먹이고, 보호하고, 나머지는 시간이 하도록 두었어요. 길들이기는 마법 같은 한순간이 아니었어요. 너무나 오래, 너무나 참을성 있게 이어진 우정이어서, 어느 순간 야생은 조용히 길든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답니다.

그럼 그 야생 들소는요? 아직 그 안에 있어요. 아주, 아주 먼 옛날 모습으로요. 소가 커다랗고 차분한 눈으로 여러분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일 때마다, 수천 년의 인내가 여러분을 되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창 같은 뿔을 가진 거인은 언덕 위의 가장 순한 이웃이 되었답니다. 몇백 세대 동안 착하게 지낸 것치고는 꽤 멋지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