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의 영리한 꾀

숫자는 공기나 화요일처럼 늘 여기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누군가는 숫자를 발명해야 했답니다. 종이 위에 기호가 생기기 훨씬 전에는, 그저 한 양치기가 문 앞에 서서 양들이 아침 속으로 어슬렁어슬렁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머릿속에는 불안한 질문 하나가 윙윙거렸지요. 어떻게 하면 양들이 모두 돌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

그가 우연히 떠올린 영리한 방법은 이거였어요. 양 한 마리가 걸어 나갈 때마다 조약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지요. 그는 ‘일곱’이나 ‘열둘’을 몰랐어요. 그저 알았을 뿐이에요. 양 한 마리, 조약돌 하나. 그날 저녁 양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양 한 마리마다 조약돌 하나씩 다시 꺼냈어요. 주머니가 비었나요? 모두 집에 온 거예요. 조약돌이 남았나요? 사라진 양을 찾으러 가야 해요.

그것이 모든 숫자 밑에 숨어 있는 비밀이에요. 그리고 이 비밀에는 멋진 이름이 있답니다. 바로 맞추기예요. 두 무리를 하나씩 짝지어 보면서, 그 크기를 전혀 몰라도 둘이 같은 크기인지 알아보는 거예요. 조약돌과 양. 손가락과 친구들. 저녁 식탁의 의자와 엉덩이. 모든 것이 가지런히 짝지어지면, 양이 맞는 거예요.

하지만 조약돌을 맞추는 일은 금방 번거로워져요. 친구에게 사촌이 ‘조약돌-조약돌-조약돌-조약돌-조약돌’만큼 있다고 말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래서 사람들은 지름길을 만들었어요. 정확한 양을 나타내는 특별한 말과 꼬불꼬불한 표시를 만든 거예요. ‘다섯.’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소리, 손으로 쓸 수 있는 표시. 진짜 조약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는 대신 말이에요. 그 꼬불꼬불한 표시가 바로 숫자예요.

그리고 숫자는 정말 멋진 방식으로 게으르답니다.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큰 수까지 모든 양마다 새 단어를 만들지 않았어요. 대신 반복되는 작은 부분들, 일의 자리, 십의 자리, 백의 자리를 쌓아 올렸지요. 레고 블록처럼요. 작은 숫자 기호 열 개만 있으면 별의 수, 개미의 수, 또는 공룡들이 돌아다니던 때부터 지금까지 흐른 초의 수도 쓸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물건을 셀까요? 세기는 세상이 우리에게 계속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 주기 때문이에요. 모두에게 먹을 음식이 충분할까? 아이들이 모두 버스에 탔을까? 이 다리는 트럭을 버틸 만큼 튼튼할까? 세기는 ‘충분할까?’ 하는 흐릿하고 걱정스러운 느낌을 분명하고 확인할 수 있는 답으로 바꾸어 줘요.

그리고 조용하지만 놀라운 점이 있어요. 숫자 다섯은 무엇을 세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양 다섯 마리, 별 다섯 개, 재채기 다섯 번, 오천 년, 모두 같은 다섯이에요. 숫자는 자신이 설명하는 물건에서 훌쩍 떨어져 자유롭게 떠다녀요. 이 작은 도약은 인류가 떠올린 가장 강력한 생각 중 하나랍니다. 실제 양이 없어도, 그 양만 따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숫자가 자유로워지자, 숫자는 호기심이 많아졌어요. 숫자들은 스스로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더하고, 나누고, 두 배로 만들고, 공평하게 나누었어요. 한 양치기의 조약돌 주머니에서 모든 것이 자라났답니다. 시계, 돈, 음악, 로켓,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는 화면까지요. 이 모든 것은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은 맞추기일 뿐이에요.

그러니 다음에 무언가를 셀 때, 계단이든 주근깨든 잠들기 전 양이든, 여러분은 가장 오래된 수학의 꾀를 쓰고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세상을 하나의 생각과 맞추고 있는 거예요. 계단 하나, 숫자 하나. 그리고 어딘가에서 아주 옛날의 양치기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모두 집에 돌아왔다고 미소 지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