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비밀
베이징 한가운데에는 도시 안의 또 다른 도시가 자리하고 있어요. 너무나 웅장하고, 너무나 비밀스러워서, 500년 동안 거의 아무도 그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이지요. 사람들은 그곳을 자금성이라고 불렀고, '금지된'이라는 뜻은 그냥 멋진 이름만은 아니었어요. 허락 없이 몰래 들어가려 했다면, 경비병들이 문 앞에서 당신을 막았을 거예요. 아마 영원히요.
명나라 황제 영락제는 1406년부터 자금성을 짓기 시작했고, 공사는 14년이나 걸렸어요. 그는 그 궁전을 본 사람마다 '와, 황제는 거의 신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백만 명의 일꾼을 고용했지요. 정말로 백만 명이요. 그들은 거의 천 채에 이르는 건물을 지었고, 모든 것은 완벽한 대칭으로 배치되었어요. 모든 담, 모든 문, 모든 뜰이 거대한 기하학의 꿈처럼 줄을 맞추고 있었답니다.
황제는 가장 중심에 있는 태화전에서 살았어요. 태화전은 중국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었지요. 황제가 황금빛 용 왕좌에 앉으면, 그는 중국 세계의 정확한 한가운데에 자리한 셈이었어요. 북쪽, 남쪽, 동쪽, 서쪽, 모든 것이 그에게서 뻗어 나갔지요. 마치 태양이 된 것 같았어요. 만약 태양이 노란 비단옷을 입고,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다스릴 절대 권력을 가졌다면 말이에요.
왜 '금지된' 곳이었을까요? 이곳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황제와 그의 가족, 아내들과 후궁들, 조언자들, 그리고 수천 명의 하인들뿐이었어요. 그중 많은 사람은 환관이었는데, 왕실 여성들 가까이에서 일해도, 뭐랄까, 가계도를 복잡하게 만들 일이 없도록 수술을 받은 남자들이었지요. 다른 사람들은요? 모두 밖에 갇혀 있었어요. 담장은 10미터 높이였고, 그 둘레에는 폭 50미터의 해자가 있었답니다.
안에서는 모든 생활이 엄격한 규칙에 따라 움직였어요. 황제의 하루는 분 단위로 짜여 있었지요. 새벽에 일어나고, 의식을 치르고, 정부 보고서를 검토하고, 차리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 접시들에 담긴 식사를 했어요. 심지어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도 검사했답니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 컵 하나, 베개 하나, 그림이 그려진 병풍 하나까지도 완벽해야 했어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우주의 질서에 대한 모욕이었으니까요. 궁전에서 산다기보다는 _끝나지 않는, 아주 화려한 연극_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더 가까웠지요.
명나라와 청나라, 두 왕조에 걸쳐 스물네 명의 황제가 그곳에서 살았어요. 어떤 황제는 아주 뛰어났고, 어떤 황제는 엉망이었지요. 명나라의 한 황제 정덕제는 격식 차린 생활이 너무 지루해져서 자금성 안에 따로 '궁전'을 지었어요. 그곳에서 그는 가게 주인인 척하며 하인들과 장사 놀이를 할 수 있었답니다. 또 다른 황제 푸이는 두 살에 왕관을 썼고, 어린 시절 내내 황금 의자에 실려 다녔어요. 재미있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평범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십 대가 되기 전까지 담장 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걸 알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자금성은 1912년까지 금지된 곳으로 남아 있었어요. 그해 중국의 마지막 왕조가 무너졌고, 아직 어린아이였던 푸이는 떠나야 했지요. 5세기 만에 처음으로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어요. 황제의 사적인 우주의 중심이었던 곳은 박물관이 되었지요. 오늘날에는 여러분도 그곳을 걸어 다닐 수 있어요. 용 왕좌는 아직도 그곳에 있어요. 해자도 아직 그곳에 있지요. 하지만 한 사람을 우주의 중심처럼 보이게 만들던 마법 같은 속임수는요? 그 부분은 끝났답니다.
그러니 자금성은 이제 더 이상 금지된 곳이 아니에요. 그저 숨이 멎을 만큼 거대하고, 놀라울 만큼 아름답고,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온 세상을 지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 주는 비밀들로 가득한 곳이지요. 요즘은 해마다 약 1,900만 명이 찾아와요. 황제들이라면 깜짝 놀랐을 거예요. 아니면 어쩌면, 몰래 조금은 기뻐했을지도 몰라요. 아직도 모두가 자기들의 집을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