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권력 그리고 거울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가장 과하게 꾸민 집을 떠올려 보세요. 이제 그것을 천 배로 키워 보세요. 그게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에요. 프랑스에 있는 이 건물은 말도 안 되게 웅장해서, 왕들이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이었죠. "내 집은 내가 사는 곳일 뿐만 아니라, 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곳이다."
1600년대에 프랑스의 루이 14세 왕에게는 문제가 있었어요. 물론 그는 왕이었지만, 귀족들, 곧 부유하고 힘센 가문들이 계속 음모를 꾸미고 권력을 차지하려고 다투었죠. 루이는 해결책이 간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그곳에 있고 싶어 할 만큼 멋진 궁전을 지으면, 모든 귀족을 가까이에 두고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루이는 아버지의 작은 사냥 별장을 유럽의 다른 모든 통치자들이 질투할 만한 궁전으로 바꾸었어요. 그는 건축가, 정원사, 조각가, 화가 등 수천 명의 일꾼을 고용하고 마음껏 해 보라고 했지요. 이 공사는 수십 년이 걸렸고, 엄청난 돈이 들었어요. 그 비용이 너무 커서 루이는 결국 얼마나 들었는지 말하는 것조차 금지했답니다.
궁전은 작은 도시가 되었어요. 가장 번성했을 때는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았어요. 왕과 왕의 가족뿐만 아니라 귀족, 하인, 근위병, 요리사, 음악가, 심지어 방에서 방으로 왕의 의자를 옮기는 사람들까지 있었죠. 프랑스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면 베르사유에 있어야 했어요. 파티와 의식에 참석하고, 왕이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 절을 해야 했답니다.
핵심은 모두 구경거리였어요. 베르사유는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었어요. 권력을 보여 주는 무대였죠. 거울이 몹시 비쌌던 시대에 거울의 방에는 거울이 357개나 있었어요. 정원에는 분수가 1,400개 있었는데, 물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기술자들은 그것들을 계속 작동시키려고 특별한 기계와 저수지를 만들어야 했답니다. 왕이 옷을 입고 점심을 먹는 하루 일과조차 귀족들이 참석하려고 경쟁하는 공개 의식이 되었어요.
루이 14세는 수십 년 동안 베르사유에서 살았고, 그의 계획은 정확히 들어맞았어요. 귀족들은 왕과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너무 바빠서 왕에게 맞설 음모를 꾸밀 시간이 없었죠. 그들은 알맞은 파티에 참석하려고 화려한 옷에 엄청난 돈을 썼어요. 왕은 정치를 자신이 조종하는 게임으로 바꾸었고, 궁전은 그 게임판이었답니다.
루이가 죽은 뒤에도 베르사유는 프랑스 왕권의 중심으로 남아 있었어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왕들이 호화롭게 사는 동안 자신들은 힘들게 살아가는 데 지친 성난 시민들이 궁전으로 몰려와 왕실 가족을 파리로 데려가도록 강요했어요. 절대왕정의 시대는 끝나 가고 있었고, 베르사유는 왕좌가 있는 곳이 아니라 박물관이 되었답니다.
오늘날에도 베르사유는 파리 바로 바깥에 그대로 있으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요. 사람들은 거울의 방을 지나고, 정원을 거닐고, 한때 왕들이 궁정을 열었던 방들에 서 보죠. 한 사람의 권력을 증명하려고 지어진 그 궁전은 이제 누군가가 "너무 많아도"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