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잔치

첫 추수감사절을 떠올리면, 아마 긴 식탁과 커다란 칠면조, 그리고 단정한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보일 거예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1621년 가을의 실제 행사는 그런 엽서 속 장면과는 거의 달랐답니다. 그 일은 야외에서 열렸고, 시끌벅적했으며, 한나절보다 훨씬 오래 이어졌어요.

장면을 한번 그려 볼까요. 나중에 필그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영국 정착민 한 무리가 배를 타고 지금의 매사추세츠에 와서 플리머스라는 작은 마을을 세웠어요. 첫해는 몹시 힘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넘기지 못했지요. 그래서 첫 수확을 정말로 거두게 되었을 때, 그것은 참으로 큰일이었답니다.

그들은 이 땅에 혼자 있던 것이 아니었어요. 왐파노아그 사람들은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왔지요. 티스콴텀이라는 한 사람은, 보통 스콴토라고 불렸는데,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중간에서 서로를 이어 주었어요. 그는 새로 온 사람들에게 이 지역의 작물을 심는 법과 물고기를 잡을 곳을 알려 주었고, 그것은 수확이 가능했던 아주 큰 이유였답니다.

그래서 정착민들은 수확 축제를 열었어요. 왐파노아그의 지도자 마사소이트가 도착했는데, 그는 손님 몇 명만 데려온 것이 아니었어요. 약 아흔 명의 남자를 데려왔지요. 정착민은 겨우 쉰 명쯤이었어요. 그래서 이 유명한 모임에서는 원주민 손님들이 주인들보다 거의 두 배나 많았답니다.

이제 음식 이야기를 해 볼까요. 파이는 없었어요. 빵을 구울 오븐도 없었고, 설탕도 부족했거든요. 으깬 감자도 없었답니다. 감자는 아직 이 지역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들이 가진 것은 정착민들이 사냥한 야생 새들과, 왐파노아그 사람들이 가져온 사슴 다섯 마리였지요.

칠면조가 식탁에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더 큰 주인공은 아마 오리, 거위, 사슴고기였을 거예요. 해산물도 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여기는 결국 바닷가였으니까요. 생선, 뱀장어, 조개류를 떠올려 보세요. 여기에 옥수수를 갈아 만든 걸쭉한 죽과, 텃밭에서 거둔 채소들이 더해졌지요. 든든했냐고요? 네. 하지만 할머니가 차려 주는 푸짐한 명절상과 똑같지는 않았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녁 한 끼가 아니었어요. 축제는 약 사흘 동안 이어졌답니다. 사람들은 물론 먹었지만, 놀이로 겨루고 자기 솜씨도 뽐냈어요. 정착민들의 총으로 표적 맞히기를 하는 일도 있었지요. 점잖은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길고 분주한 축제에 더 가까웠어요.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그때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지 않았답니다. 필그림들에게 진짜 "감사일"은 실내에서 진지하게 기도하는 날을 뜻했어요. 이 떠들썩한 야외 잔치와는 정반대였지요. 이 수확 잔치가 "첫 추수감사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훨씬 나중, 미국 사람들이 따뜻한 건국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우리가 아는 그 명절은 몇 세기 뒤에 만들어졌어요. 사라 조세파 헤일이라는 작가가 그것을 공식 명절로 만들기 위해 여러 해 동안 힘썼고, 1863년에 링컨 대통령이 국가 감사일을 선포했지요. 칠면조와 파이, 검은 모자는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덧붙은 것들이었답니다.

그러니까 실제 첫 추수감사절은 사흘 동안 이어진 수확 잔치였어요. 대부분 야외에서 열렸고, 정착민보다 왐파노아그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칠면조보다 사슴고기가 더 많았고, 파이는 정말 하나도 없었답니다. 따뜻한 엽서 같은 모습은 나중에 생겨났어요. 실제 행사는 더 어수선하고, 더 시끌벅적했으며, 솔직히 훨씬 더 흥미로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