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간 마차들

마차 한 대가 풀의 바다를 가로질러 굴러가고, 그 안에 한 가족이 가진 모든 것이 실려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1800년대에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마차를 지는 해가 있는 쪽으로 향하게 하고 2천 마일의 여행을 떠났어요. 대체 왜 그런 일을 했을까요? 그 대답은 대개 반짝이는 한 단어였어요. 바로 땅이었지요.

서쪽, 오리건과 캘리포니아 같은 곳에서는 정부가 거의 땅을 거저 주다시피 했어요. 붐비는 동부 마을에 비좁게 살던 가족에게 그 생각은 어지러울 만큼 놀라웠지요. 그저 그곳에 가서 농사를 짓기만 하면 수백 에이커의 공짜 땅을 얻을 수 있다니요. 그것은 세상의 한 조각을 자기 것으로 가질 기회였고, 그 희망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옮겨 놓을 만큼 강했어요.

그러다가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온 나라가 한꺼번에 정신을 잃은 듯했어요. 갑자기 꿈은 그저 농장이 아니었어요. 강바닥에 숨어 있는 큰 재산이었지요. 다음 해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아 달려가서 별명까지 얻었어요. 1849년이라는 해를 따서 ‘포티나이너스’라고 불렸답니다.

하지만 서쪽으로 그냥 산책하듯 갈 수는 없었어요. 동부의 마을들과 서부의 꿈 사이에는 한 나라만큼 큰 산과 강과 사막이 놓여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족들은 미주리 강 근처의 출발 마을에 모여 튼튼한 마차를 사고, 길에서 동물들이 먹을 봄풀이 충분히 자랄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들의 유명한 탈것은 덮개 마차였어요. 구부러진 천 지붕을 얹은 나무 상자 같은 마차였지요. 멀리서 보면 풀밭 위를 떠가는 작은 범선처럼 보여서 ‘프레리 스쿠너’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소들이 그 마차를 끌었는데, 느리지만 힘이 셌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마차에는 먹을거리와 도구가 너무 가득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길 내내 마차 옆을 걸어갔다는 거예요.

그들은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닳고 닳은 길을 따라갔어요. 오리건 트레일과 캘리포니아 트레일은 먼저 지나간 마차들이 땅에 눌러 만든 바퀴 자국이었지요. 그 길들은 표지판이 있는 도로가 아니었어요. 이미 그 길을 지나간 여행자들이 전해 준, ‘저 강 쪽으로 가고, 그다음에는 저 산길로 가라’는 말들이 길게 이어진 것에 더 가까웠답니다.

그 여행은 네 달에서 여섯 달이 걸렸고, 힘들었어요. 정말로 힘들었지요. 건너야 할 강이 있었고, 올라야 할 가파른 고개가 있었고, 숨을 곳 없는 폭풍도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마차를 줄지어 세우고 함께 여행했어요. 서로 짐을 끌고, 고치고, 길을 찾는 일을 도왔지요. 이곳에서 이웃은 그저 함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이웃은 버텨 내게 해 주는 힘이었답니다.

밤이 되면 마차들은 큰 원을 만들며 모였어요. 사람들은 때때로 이것이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상상하지만, 대부분은 소와 가축들이 어둠 속으로 헤매어 가지 못하게 하는 깔끔한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그 원 안에서는 모닥불이 탁탁 타오르고, 저녁밥이 익어 갔고, 보통 누군가가 별이 뜰 때까지 바이올린을 켰답니다.

마침내 트레일은 오리건의 푸른 계곡이나 캘리포니아의 금광 지대로 이어졌고, 긴 걷기는 끝이 났어요. 모두가 부자가 된 것은 아니었고, 모든 농장이 잘된 것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물결은 걸어서, 또 소의 힘으로 한 대륙을 건넜고, 그 덕분에 서부에는 새로운 마을들이 가득 생겨났답니다.

그렇다면 개척자들은 왜 서쪽으로 갔을까요? 땅을 위해, 금을 위해, 새 출발을 위해, 그리고 지평선 너머에 더 나은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단순하고도 고집스러운 희망 때문에 갔어요. 그러면 어떻게 그곳에 갔을까요? 삐걱거리는 소가 끄는 마차로, 한 번에 느린 1마일씩 나아갔어요. 풀밭을 항해하는 작은 천 배 옆을 걸어가면서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