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바로 당신
어느 저녁 식탁을 둘러보아도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 방에서 휴대폰을 넘겨 보며 혼자 더 빨리 먹을 수도 있죠. 하지만 대신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같은 밥그릇을 건네고, 하루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할까요?
수백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불을 발견했어요. 갑자기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러려면 음식이 익는 동안 앉아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앉았어요.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했어요. 웃었어요. 다음 날 사냥을 계획했어요. 음식을 나누는 일은 시간을 나누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뇌는 함께 먹는 식사를 신호로 받아들여요. 이 사람들은 안전하다는 신호죠.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조금 무방비가 됩니다. 손은 바쁘고, 주의는 나뉘니까요. 야생 동물들은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는 한 거의 절대 나란히 먹지 않아요. 우리는 그 오래된 본능을 부엌까지 가져온 거예요.
또 화학적인 속임수도 일어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뇌는 행복한 화학 물질인 도파민을 조금 내보냅니다. 삼촌의 형편없는 농담에 웃을 때도 또 한 번 나와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면, 뇌는 그것들을 서로 연결합니다. "이 사람들과 있으면 기분이 좋아." 유대감을 만드는 지름길인 셈이죠.
식사는 정보를 주고받는 시간이기도 해요. "학교는 어땠어?" "프로젝트는 끝냈니?" "이번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 이런 말은 모두 문자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하면서 빵을 건네는 데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귀 기울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눈맞춤. 표정. "생각 중이야" 또는 "의견은 다르지만 그래도 널 사랑해"라는 뜻의 아주 작은 멈춤들 말이에요.
서로 다른 문화들은 함께 먹는 음식을 중심으로 온전한 언어를 만들어 왔어요. 한국에서는 가장 어린 사람이 가장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일요일 점심이 세 시간이나 이어질 수 있어요. 모로코에서는 모두가 손으로 같은 타진을 나누어 먹습니다. 규칙은 다르지만, 메시지는 같습니다. "너는 여기 속해 있어."
음식 자체에도 의미가 담겨 있어요. 할머니의 만두 조리법은 단순한 설명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할머니의 어린 시절, 할머니 어머니의 손, 할머니가 온 곳이에요. 할머니가 만두피를 꼭 그렇게 접는 법을 가르쳐 줄 때, 할머니는 자기 이야기의 한 조각을 건네주는 거예요. 식사는 기억이 됩니다.
사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먹습니다. 음식은 핑계일 뿐이에요. 진짜 잔치는 당신 맞은편에 있는 얼굴들입니다. 이야기들, 다툼들, 끔찍한 농담들, 조용한 동행 말이에요. 식탁은 우리가 서로에게 이렇게 일깨워 주는 곳입니다. 너는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