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섬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해안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섬이 있어요. 수백 년 동안 배들이 그 섬을 지나갔습니다. 죄수들이 그곳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다 1900년대 후반, 그 바위섬에서 한 나라 전체를 바꾼 일이 일어났습니다.
로벤섬은 네덜란드어로 물개를 뜻하는 말에서 이름이 생겼어요. 유럽 사람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섬에는 물개가 가득했거든요. 하지만 1600년대부터 그곳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내는 곳이 되었습니다. 정치범들. 아픈 사람들. 정부를 불편하게 만든 누구든지요.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피부색으로 나누고 백인에게 모든 권력을 주는 법들이었어요.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은 투표할 수 없었고, 원하는 곳에 살 수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법에 맞서 싸우면, 정부는 그 사람을 범죄자라고 불렀습니다.
로벤섬은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한 사람들을 가두는 최고 보안 교도소가 되었습니다. 감방은 아주 작았어요. 겨우 누울 만큼의 공간뿐이었죠. 정치범들은 불타는 태양 아래 석회암 채석장에서 날마다 돌을 깼고, 눈부시게 하얀 돌은 그들의 눈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 섬은 희망을 짓밟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습니다.
1964년, 한 죄수가 도착했습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시위와 사보타주를 이끌었던 변호사, 넬슨 만델라였습니다. 정부는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죄수 번호 466/64를 받았고, 가로세로 2미터인 감방에 갇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보낸 27년 가운데 18년을 이 섬에서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감방에 가둘 수는 있어도, 생각까지 가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수들은 로벤섬을 비밀 대학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역사, 언어, 정치를 가르쳤습니다. 벽에 수업 내용을 긁어 쓰고, 파이프를 통해 속삭이고, 책을 숨겼지요. 만델라는 간수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공부했습니다. 적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첫걸음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만델라와 다른 죄수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가들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시위자들은 행진했습니다.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라”는 전 세계의 외침이 되었습니다.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했던 섬의 감옥은 오히려 그 목소리를 더 크게 퍼뜨리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무너지고 있었고, 정부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90년 2월 11일, 27년 만에 넬슨 만델라는 감옥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4년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완전한 민주 선거에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를 꺾기 위해 만들어진 곳, 로벤섬은 오히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을 단련해 낸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억압을 상징하던 감옥은 자유의 승리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로벤섬은 박물관입니다. 방문객들은 케이프타운에서 페리를 타고 와 감방과 채석장을 걸어 봅니다. 예전 죄수들이 안내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때 “희망을 버려”라고 속삭이던 그 섬은 이제 “희망은 결코 가둘 수 없어”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이 섬이 중요합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막을 수 없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